역삼동에서 함박스테이크 한 그릇 먹기가 왜 이렇게 눈치 보였는지

역삼동에서 함박스테이크 한 그릇 먹기가 왜 이렇게 눈치 보였는지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메뉴 고민의 굴레

오늘도 어김없이 11시 30분이 지나자마자 역삼역 근처 사무실에서 탈출할 생각만 했다. 매일 먹는 게 찌개 아니면 비빔밥인데, 가끔은 좀 부드러운 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예전에 다른 동네에서 먹었던 함박스테이크 생각이 났다. 젓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으스러지면서 육즙이 살짝 배어 나오던 그 느낌 말이다. 역삼동 주변을 훑어보니 생각보다 함박스테이크 전문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고급 이자카야나 고깃집 위주라서 점심에 혼자 들어가서 스테이크 한 접시 시키기가 영 뻘쭘하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 함박스테이크집

길을 걷다가 평소 안 가본 골목에서 작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가격대는 1만 2천 원에서 1만 5천 원 사이였는데, 이 동네 물가 치고는 뭐 적당한 수준인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이 딱 5개 정도 있는 작은 가게였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분이 메뉴판을 툭 던져두고 가시는데, 뭔가 ‘빨리 골라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나는 그냥 제일 기본인 데미글라스 소스가 뿌려진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점심 회식을 하는 팀이거나, 아니면 빠르게 해장국을 먹고 나가는 분위기였다.

기대했던 육즙 대신 마주한 현실적인 맛

주문하고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는 걸 기대했는데, 그냥 하얀 접시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이프로 썰어보니 생각보다 질감이 거칠다. 입안에 넣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보다는, 냉동 함박스테이크의 익숙한 맛이 먼저 느껴졌다. 가니쉬로 나온 구운 채소들은 조금 말라 있었고, 옆에 곁들여진 샐러드는 드레싱이 너무 과해서 채소 맛이 하나도 안 났다. 가격이 1만 4천 원이었는데, 이 돈이면 그냥 회사 근처 미역국 맛집에 가서 따뜻한 국물이나 먹을 걸 그랬나 싶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점심 메뉴의 정답

먹는 내내 ‘내가 왜 굳이 이걸 찾아서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맛있지도 않은 그런 애매한 맛. 배는 부른데 마음은 헛헛한 그런 느낌이었다. 가게 안의 환기가 잘 안 되는지 옷에 냄새가 꽤 배었다. 나중에 사무실 들어가면 동료들이 ‘오늘 점심 뭐 먹었냐’고 물어볼 텐데, 굳이 이 함박스테이크 이야기를 꺼내기도 좀 민망했다. 차라리 망포역 근처에서 친구들이랑 먹었던 푸짐한 함박스테이크가 더 생각나기도 했다. 거긴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훨씬 편했는데.

다음엔 그냥 마음 편한 곳으로 가야겠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가게 사장님이 무심하게 인사를 하셨다. 나도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나왔는데,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역삼역 인근은 정말 먹을 게 많으면서도 막상 점심 메뉴로 딱 이거다 싶은 걸 찾기는 참 어렵다. 내일은 그냥 고민하지 말고 매일 가던 백반집에나 가야겠다. 거기 사장님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알아서 밥을 더 챙겨주시니까 그게 마음은 더 편하다. 함박스테이크는 아무래도 다음 주말이나 되어야 다시 도전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집에서 시판 제품을 사서 해 먹는 게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