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로수길에서 계획 없이 들어간 곳들

샤로수길에서 계획 없이 들어간 곳들

계획에 없던 파스타와 엔초비의 기억

며칠 전 샤로수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파스타가 당겨서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는데 엔초비 파스타가 눈에 띄더라. 예전에 어디선가 먹었을 때 묘하게 짠맛이 감돌면서도 감칠맛이 폭발했던 기억이 나서 고민 없이 주문했다. 가격은 1만 7천 원 정도였는데, 요즘 물가 생각하면 아주 비싼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싼 느낌도 아니었다. 막상 나온 접시를 보니 생각보다 마늘이랑 페페론치노가 많이 들어있었다. 첫 입 먹었을 때 ‘오, 이거다’ 싶었는데, 세 입쯤 먹으니까 입안이 너무 짜서 물을 계속 들이켜야 했다. 엔초비 특유의 비릿함과 짠맛이 밸런스를 잘 맞춰야 맛있는 건데, 그날 먹은 건 조금 과했던 것 같다. 다 먹고 나니 갈증이 너무 심해서 근처 편의점에 들러 탄산수를 두 병이나 샀다.

사람 많은 샤로수길의 저녁 풍경

파스타를 먹고 나서 친구랑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샤로수길은 확실히 예전보다 사람이 많아진 기분이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웬만한 서울대입구 술집들은 죄다 만석이었다. 조금 걷다가 숙성회라는 간판이 보이길래 ‘시메사바나 먹을까?’ 하고 횟집 근처를 기웃거렸다. 예전에 친구가 샤로수길 어느 횟집에서 시메사바를 먹었는데 그렇게 비리지 않고 괜찮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서였다. 그런데 막상 문 앞에서 보니 대기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 4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바로 포기했다. 기다리는 걸 워낙 싫어해서인지, 그냥 자리가 나는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좁은 골목 안쪽에서의 고민들

결국 돌고 돌아 숙성회는 포기하고 근처에 밀푀유나베나 스끼야끼를 파는 집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가게였는데, 내부는 이미 시끌벅적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 밀푀유나베가 나올 때까지 한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끓기 전까진 비주얼이 참 예쁜데, 막상 끓기 시작하면 숨이 죽어서 금방 평범한 전골이 되어버리는 게 항상 아쉽다. 1만 원대 중후반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국물 맛은 무난했다. 사실 이런 술집에서 엄청난 맛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따뜻한 국물에 술 한잔하는 분위기가 중요했다.

메뉴 선택의 모호함

가끔은 내가 뭘 먹고 싶은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히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들어갔고, 술집에선 따뜻한 게 당겨서 나베를 시켰는데 다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아, 그냥 떡볶이나 먹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성회를 먹었으면 더 깔끔했을까 싶기도 하고. 이날은 정말이지 메뉴 선택의 연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도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의 날이었다.

다음엔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샤로수길 입구 쪽을 지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줄을 서 있더라.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은 다들 참 대단한 것 같다. 나는 굳이 1시간씩 기다려서 먹을 자신은 없는데 말이다. 엔초비 파스타의 짰던 뒷맛이 입안에 남아서인지, 집에 오자마자 물을 한 컵 더 마셨다. 다음에는 그냥 익숙한 곳에 가서 실패 없는 메뉴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마 또 나가면 새로운 메뉴를 찾아 메뉴판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겠지. 당장 내일은 뭘 먹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댓글 3
  • 밀푀유나베가 끓을 때 비주얼이 예쁜 건 인정인데, 끓기 시작하면 금방 맛이 없어지는 게 정말 아쉽네요. 저도 가끔 갑자기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서 메뉴 선택이 어려워져요.

  • 시메사바 기다리면서 입맛 다 가버렸네요. 결국 밀푀유나베 먹어서 다행이에요.

  • 밀푀유나베 비주얼은 정말 예뻤는데, 끓으면 금방 평범해지는 게 아쉽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 번 있죠, 너무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아요.